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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터키)-시리아 강진, 사망자 2만4000명 넘어...형제국가 터키

플랙스라이프 발행일 : 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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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국가인 튀르키예(터키)·시리아의 지진으로 사망자가 2만 4000명이 넘은 가운데 계속 늘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인데요. 그 현황과 우리나라와 형제국가인 터키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터키와 시리아 지도 사진지진피해 현장 사진
튀르키예와-시리아-지진발생지역과-피해발생현장
 

튀르키예 / 시리아 지진사망자 2만 4000명 넘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2만 4000명을 넘겼다고 AFP, 블룸버그통신 등이 11일(현지시각) 보도했는데요. 튀르키예 당국과 시리아 인권단체 등의 집계에 따르면 양국의 지진 사망자는 이날 2만 4150명을 넘겼다고 밝혔습니다.

 

영하의 추위 속에 구조가 여의치 않아 아직 수만 명은 실종 상태인데 이날 튀르키예 소방당국은 국내 사망자만 이미 2만명을 넘긴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으며 지진으로 8만 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해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전했습니다.

 

구조의 골든타임이 지나가면서 기적적인 생환 소식도 차츰 빈도가 줄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으며 시리아에선 정부를 대신해 반군지역 구조 활동에 앞장서 온 민간 구조대 ‘하얀 헬멧’이 구조 활동보다는 사망자 수습에 주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얀 헬멧은 “지진이 발생한 이후 3384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라며 “지진 발생 후 108시간 동안 집중 수색을 벌였지만 잔해에 깔린 사람 중 생존자가 있을 확률은 희박하다”라고 밝혔습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미르야나 스폴야릭 총재는 북부 시리아 지역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즉각적으로 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성명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북부 시리아의 모든 지역에서 인도주의 지원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공정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방해받거나 정치화돼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튀르키예(터키)는 우리나라와 형제국가

 

2022년 부터 국호를 터키에서 튀르크인의 땅을의미하는 튀르크예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터키와 대한민국은 형제국가인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터키’ 하면 형제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터키가 6·25 때 미국, 영국에 이어 1만 4936명이라는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하여 미국에이어 두 번째로 많은, 721명 전사에 2,147명이 부상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또 전사했을까요? 라는질문을 하면 그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건 궁극적인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투르크’라고 부릅니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코리아(고구려 또는 고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역사를 배웠다면 ‘고구려’와동시대에 존재했던 ‘돌궐(突厥)’이라는 나라를 알고 있을 겁니다. 220년에 수립된 ‘테오 야브구’ (Teoman Yabgu /흉노/ 匈奴) 왕국은 몽골과 함께 중국에서 흉노(匈奴)라 불리던 민족의 하나로, 6세기 중엽부터 8세기 중엽까지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했지요. ‘투르크’는 돌궐의 다른 발음이며, 우리 한민족과 같은 우랄 알타이족으로 고구려 전성기엔 숙신과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돌궐인이 고구려의 기층(基層) 민중에 속했습니다. 

또한,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 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고구려가 멸망한 후(668년) 돌궐은 고구려의 유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우리민족과특별히 긴밀해졌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부분의 서민은 초기엔 당(唐), 후엔 신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한반도에서 살아갔습니다. 또 귀족계급 등 중상류층 가운데 일부는 당에 포로로 잡혀갔지요.

나머지 고구려 유민은 몽골, 글안돌궐 등 타민족에 섞여 살다가, 682년에 동돌궐이 울란바토르(현 몽고의 수도)에 돌궐 제2 제국을 수립할 때 바로 여기에 참여합니다. 참여한 유민의 숫자가 전체 돌궐 제2제국 인구의 절반인 20만 명이 넘었다니 돌궐 제2 제국은 고구려의 후예라 하여도 될 판이지요.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습니다.그리고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 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들을 여전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처럼 터키가 한때는 고구려의 기층민중이었고, 고구려 멸망 후에는 우리가 돌궐 제2 제국의 기층민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거지요. 

6·25 때 북한이 남침하자,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군대 (1만 4936명, 전사 721명, 부상 2147명)를 파견해 우리를 도왔던 것이지요. 파병이 늦어지자, 터키의 고등학생들이 왜 형제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느냐면서 데모를 벌였답니다.


6·25 참전과 올림픽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 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적이 없는 대형 터키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 ‘형제애’는더욱 굳건해졌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 받던 나라, 월드컵때 우리가 흔든 터키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 한국바람을 일으켜 그 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습니다. 이제 그 형제나라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도와주고 같이 아파해야 됩니다. 6.25 때에 800여 명이 생명을 바쳐 우리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최고의 선행으로 도움을 줘야 됩니다. 그들은 피가 섞인 우리들의 형제니 까요...

지진으로 생명을 잃은 수많은 튀르키예인들에게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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